요즘은 농업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과일,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수입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구경도 못했던 과일들이 가까운 마트에 가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몸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계절식품이 좋겠지요. 텃밭이 있는 분들은 상추, 고추를 비롯해서 다양한 야채를 길러서 먹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참으로 부러울 뿐입니다.
제철음식과 계절식품은 넓은 의미로 보면 같아 보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식품은 각각 생산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맞춰 먹는 음식이 제철음식이다. 계절식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구분해서 먹으면 좋은 식품을 뜻한다. 물론 계절식품에는 대부분의 제철음식이 포함된다.
계절식품이 몸에 좋은 이유는사람이 환경에 맞게 적응해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백리 밖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상들의 혜안에 무릎을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결국 나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우리 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몸의 DNA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익숙하게 먹어 왔던 먹을거리에 나의 DNA가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익숙한 음식을 섭취할 때 우리 몸이 가장 쉽게 받아들인다. 내가 살고 있는주변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내 몸에 맞게 세팅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음식을 만나게 되면 당연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몸의 조정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적응기 동안에는 몸속의 DNA가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생소한 이물질로 착각하고 대응하는 자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이런 적응기가없이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건강한 삶이라고 표현할수있다.
식품은 생산되는 지역도 고려해야 하지만 수확하는 계절도 중요하다. 자연과 잘 조화가 되려면 계절에 따라 제철에 생산되는 음식을 먹는것이 좋다. 몸의 시스템이 계절 변화에 맞게 조절되어 왔기 때문에 계절에 맞지 않는 과일이나 채소류를 접하면 몸 안의 DNA는 '왜 이 시점에 저런 음식이 들어오지? 이런 것들은 더 있다가 날씨가 더워지면 먹어야 하는 것인데… 하면서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단지 그 정도가 미미하여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절음식은 점차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봄이 오면 논두렁에 가서 논두렁을 살짝 무너뜨리면서 냉이를 캐고 야산에서 달래를 캐어 먹으며 봄나물로 계절의 향기를 만끽했던 기억들은 이제 옛 추억으로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닐하우스 재배가 확대되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봄나물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철음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그냥 막연히 흘려들을 일은 아니다. 계절의 변화와 우리 신체의 변화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봄
봄철이 되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몸이 많은 활동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켠다. 당연히 신진대사활동이 활발해지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신진대사를 할때 꼭필요한 것이 비타민과 무기질이다. 이것이 부족하면 에너지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활발한 활동이 어렵다. 봄철은 다른 계절과 달리 3~5배 정도의 비타민과 무기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 비행기나 자동차가 시동을 걸 때가 주행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휘발유가 필요한 것처럼 신체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영양소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신경쓰지 않고 보통 때 처럼 영양분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몹시 힘겨워하는데,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춘곤증이다.
다른 계절보다 봄에 유난히 몸이 피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소라면 음식을 먹은 이후에 두뇌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소화를 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당할텐데, 봄에는 신진대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져 우리 몸이 소화를 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조차 급급해진다.
그러면 어찌 되겠는가? 두뇌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잠시 활동을 멈추고 쉬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낮잠을 자는 것이다. 몸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여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니 가만히 쉬어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때 먹어야 하는 것이 쑥, 씀바귀, 냉이, 달래, 유채나물, 곰취 등의 봄나물이다. 봄철 들이나 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나물들에는 비타민 B를 비롯하여 무기질 등 영양소가 흠뻑 들어 있다. 이런 봄나물들은 신체활동이 증가하면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봄철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봄나물을 충분히 먹어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면 기온이 많이 올라가므로 조금만 활동을 해도 땀이 많이 나고 열이 오른다. 날씨 때문에 흘리는 땀은 운동을 하면서 홀리는 땀과 다르다. 사우나처럼 갑자기 주변 온도가 올라가서 땀을 흘리게 되면 몸 안의 노폐물이 배설되기보다는 우리 몸에 필요하고 유용한 무기질들이 빠져 나가게 된다. 이것을 제때에 보충해주지 않으면 기력이 약해져 더운 여름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수분의 보충을 충분하게 대신해 줄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운 여름 체온을 낮추어 주면서 무기질과 수분이 풍부한 식품이 바로 오이, 수박, 상추, 시금치, 참외와 같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이다. 이런 식품들을 섭취하면 더운 여름의 열기도 식혀주고, 땀을 흘리면서 부족해진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보완되어 무더운 여름을 무난히 이겨낼 수
가 있다.
▶노폐물이 쌓이는 가을
가을이 되면 여름철까지 열심히 활동한 우리 몸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다음날 피곤하듯이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 몸속의 노폐물을 의심해야 할 때이다. 노폐물이 쌓이면 바로 바로 제거해주어야 건강한 몸을 다시 찾을 수 있는데, 이에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식이섬유이다. 식이섬유그자체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하고 그대로 배설되는 영양소이다. 하지만 그냥 배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불필요한 노폐물이나 중금속, 나쁜 콜레스테롤등과 같은 물질들과 결합하여 배설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청소꾼으로 중요한 식품 구성성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식이섬유가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양소 취급을 받지 못하였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기능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영양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 연유로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에게 필수적인 성분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가을에 주로 수확되는 우엉 이나 토란, 버섯, 고구마 등에는 식이 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우리 몸이 식이섬유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가장 알맞은 음식이 수확되는 것이다. 이것 이 바로 우리 몸의 생리시스템과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민족은 추석 무렵이 되면 새로운 햇곡식, 과일 그리고 토란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겨울
겨울이 되면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운동량도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뇌 경색이나 중풍 등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걸리는 질병이 많이 발생한다.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나쁜 콜레스테롤이 혈관 내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이 혈관내에 쌓이면 동맥경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심하면 뇌졸중을 유발한다
겨울에는 이처럼 나쁜 콜레스테롤이 윈인이 되는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수 있는 불포화지방과 인지질이 풍부한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이 성분은 주로 콩을 통해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콩으로 만든 비지, 청국장, 두부, 두유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 우리 조상들이 정월보름에 먹었던 오곡밥(찹쌀, 검은콩, 붉은 팥, 차조, 찰옥수수)과 부럼(밤, 호두, 은행, 잣,
땅콩 등)은 겨울철에 잘 맞는 건강식으로 영양가가 높으면서 따뜻한 성질을 가진 음식들이다.
찹쌀은 열이 많은 식품으로 식욕이 부진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에 아주 효과적이다.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호두는 오메가-3 지방을 비롯하여 비타민 B군, 단백질, 칼슘도 많이 들어 있어 우유나 달걀의 영양가를 뛰어 넘는다. 호두를 아이들의 이유식이나 간식으로 활용해서 먹이면 겨울철 건강에 도움이 된다. 땅콩은 단백질
이 많이 들어 있어 대표적인 겨울철 보양식 중 하나이다. 땅콩 속에 함유된 글루타민과 아스파트산 등의 아미노산은 뇌세포의 발육을 돕고 기억력을 증진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잣 역시 보양식이며 허약한 사람들의 간식으로 좋다. 특히 겨울철 건조한 피부나 마른기침, 습관성 변비 등에 효과가 있다.
과거 냉장고가 없던 시절, 겨울철에는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특히 비타민C가 부족했다. 그래서 김장김치를 담그고 시래기나물 같은 것을 만들어 두었다가 겨울철에 먹곤 했는데, 이 또한 비타민 C가 풍부한 우리 고유의 식품 중 하나였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했던가 젊은 시절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을 좋아하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서서히 된장찌 개나 김치찌개, 또 계절마다 제철음식을 찾는 등 입맛이 바뀌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음식을 먹다 보면 우리들이 오랜 전통 속에서 먹어 왔던 음식이 아닌 것들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먹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내 몸에 맞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몸이 느끼게 되면서 편안한 제철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뀐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이 보약이라고 한다면 편안한 음식이야말로 자신에게 잘맞는 음식이며, 제철음식이나 계절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보약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신체가 계절에 적응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몸과 음식의 조화가 가장 잘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계절식품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외국의 일류 요리사들은 요즘 소규모로 현지에서 재배하는 농부로부터 신선한 제철음식만을 구입하여 쓴다고 한다. 깊고 싱싱한 계절의 맛은 그 계절에 탄생하는 제철음식에서 맛볼 수밖에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출처: 우리집 건강식탁 프로젝트 | 노봉수 | 예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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